[마이데일리 = 봉준영 기자] 작가 노희경(42)의 초침은 일반 대중들의 눈보다 조금 앞서있다.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 판타지나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리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가 사는 세상에는 부모를 죽인 원수도, 피도 눈물도 없는 무조건적인 악인도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오케스트라 협력같다"
드라마 작가로 산다는 것은 노희경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거짓말' '꽃보다 아름다워' '굿바이 솔로' 등 '노희경표' 드라마란 브랜드를 만든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고 설명했다. 작은 키에 40kg도 안되는 왜소한 몸으로 너무나도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펼쳐내는 노희경 작가는 "무엇보다 살면서 궁금하고 알고싶은 세상의 이치를 드라마를 하면서 알아간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라고 했다.
노 작가는 '사람냄새'나는 드라마를 쓴다는 평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사람이 쓰는데 그럼 사람 냄새가 나지 동물 냄새가 나겠어요?"라고 반문한다. "내가 사는 세상은 여느 누구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노 작가는 "누구를 씹다(?)가 집에 가면, 나는 얼만나 잘하길래 누굴 욕하나 하고 한번 더 돌아보고, 남을 질투하고 나면 혼자 속상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다"고 세상의 모습은 끄집어냈다. 사실 천하의 악인도 이유 없는 죽일 놈도 없지 않은가.
42세의 나이면 이제 시작이라는 노 작가는 드라마의 매력을 "오케스트라 협력"이라고 표현했다. "부족한 점을 서로 커버해주고, 어우러져 가는 것이 좋아 드라마가 좋다. 이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의 가장 큰 친구를 만났고, 다시 태어나도 드라마 작가를 할 것이다"는 것이 노 작가의 드라마 예찬론이다. 적어도 20~30년은 더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가 됐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부진? "내 숙제다"
표민수 감독과 노희경 작가의 6년 만의 재회, 톱스타 송혜교, 현빈의 출연으로 지난 10월 야심차게 막을 연 KBS 2TV 월화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 5% 남짓의 시청률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 작가도 드라마로 밥 벌어먹는 사람인지라 시청률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드라마도 상품인지라 시청률 나와줘야 한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아 안쓰럽고, 많은 고민을 하지만 나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내다가도 "시청률에만 연연하고 민감하게 반응 하지는 않는다. 드라마를 하면서 나의 일순위는 언제나 동료들과의 마음이다. 과정 속에서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고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나는 영원히 행복하다. 시청률은 두번째, 혹은 세번째 쯤 될 뿐이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노희경 작가가 욕심을 많이 냈다. 너무 잘 아는 분야였고, 오랜 시간 기획한 만큼 '그들이 사는 세상'을 만든 이유는 명료했다.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이들은 표현에 있어 참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리얼드라마가 요구되는 시대가 왔고, 여기에 내가 가장 잘 아는 드라마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을 뿐이다. 근데 내가 너무 앞서 갔나?"라며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노희경 작가도 표민수 감독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표현'의 세기였다. 매회 소제목을 다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나 주인공들의 내레이션은 아직 낯설지만 분명 새로운 시도다. "표 감독도 나도 좀더 사실적이고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큐성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하늘아래 소재는 별다른 것이 없다. 무엇보다 표현이나 구성, 형식 등에 고민을 거듭했다. 언제나 예전보다 내가 과연 진보했는지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내레이션에 있어 많은 공을 들였다는 노 작가는 "드라마를 만들면서 느꼈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최고를 향한 배우들이기에 믿고 또 믿는다"
일명 '노희경 사단'이라고 까지 불리며, 노 작가 작품에 빠지지 않는 배우들이 있다. 나문희, 윤여정, 배종옥. 이들은 대한민국 어느 누가 봐도 연기 잘하는 최고의 배우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그러나 노 작가는 이들을 '최고'의 배우가 아닌 '최고를 향해 언제나 노력하는 배우'라고 언급했다.
"누구나 알겠지만, 그들은 참 잘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잘한다는 생각이 없는 배우들이다. 언제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생각하고 늘 고민한다. 교만이 없고, 언제나 노력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내가 그들과 함께 작업을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노희경 작가는 배우들과 작업을 할 때 "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은 이전 작품들과 절대 똑같은 연기를 하지 않는다"란 자신감이 있다고 했다. "나문희 선생님이 '거침없이 하이킥'의 코믹한 모습을 이번에도 또 보이고, 배종옥씨가 '박정금'으로 연기한다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함께 찾아가는 일이기에 배우도 나도 공부를 한다. 어쨌든 확실히 내가 그들의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신뢰감을 드러냈다.
노 작가는 배우들 이야기에 한층 진지함이 더해졌다. "난 광적이고 필(Feel)에 따른 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의 느낌을 분석하고 고민해 표현하는 연기를 좋아한다. 눈물 콧물 다 짜며 우는 것 보다, 울다 지쳐 멈칫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배우는 별로 없다. 대본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송혜교가 그걸 참 잘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유독 연기력 논란에 휩싸인 배우 송혜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노 작가는 단번에 송혜교를 '어른'이라고 표현했다. "26살 같지 않다. 내가 그 나이에 저렇게 어른스럽고 의연할 수 있었나 생각해 봤지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따가운 시선에 흔들리고 위축될 수 있는데 송혜교는 그렇지 않다.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욱 욕심을 내고 끝없이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송혜교는 충분히 어른이다, 10년 후 그녀는 상상하는 것 이상의 배우가 될 것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 작가는 '노희경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 외에도 숱한 신인배우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숨은 진가를 끄집어낸다. '굿바이 솔로'에서 김민희가 그랬고, 현재 '그들이 사는 세상' 속 엄기준, 최다니엘, 서효림 등이 그렇다. 노 작가는 신인배우들에게 "에너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신인배우들은 순수함, 열정, 에너지가 있다. 거기에 난 대본이라는 베이스를 깔아주고 믿음만 얹혀주면 된다. 누구나 완숙하지 않은데 쉽게 단정 짓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못할 때 괜찮다고 말해주면 그들은 200%를 해낸다. 난 그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이것이 노희경 작가의 배우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