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제작소는 어떤 곳인가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발굴해 실험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창안센터는 별것도 아닌 생각에서 대안을 찾고, 해피시니어에서는 전문직 은퇴자들이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간판문화연구소는 간판 학교를 열어 상을 주고 페스티벌도 펼치죠. ‘왠 간판이냐’ 의아해하실지 몰라도 간판이라는 게 마음의 표현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이런 일은 정부가 규제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고, 그래서 민간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희망제작소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사회에 새로운 엔진을 다는 일을 하고 있죠.”
■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말이군요.
“ 그렇죠. 창의적인 힘이 희망제작소를 밀고 가는 힘이라고 봅니다. 희망제작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를 정확히 통찰하고, 비전을 만들고 구체화할 수 있는 콘텐츠들은 창의성에서 나오니까요. 이제는 1970·1980년대 발전모델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태·문화·예술적 가치, 그리고 창의적 대안들이죠. 비영리 민간단체나 정부·기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파트너십과 윈윈 구조, 굿 거버넌스, 투명성, 책임성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새로운 가치이자 비전, 미래의 방향이라고 여깁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자유롭고 창의적이잖아요. 우리만한 인재들이 어디 있습니까. 다만 과거의 가치나 습관·제도와 결별하는 게 필요하죠.”
■ 일을 하려면 수익모델이 필요할 텐데.
“ 좋은 일만 한다고 해서 돈만 쓰면 안 되잖습니까. 희망제작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케팅하고 수익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네오위즈나 LIG 등 각종 공공기관 및 갱생보호기관의 컨설팅도 하고 있고요. 이 같은 일을 하려면 인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특히 자원봉사자를 잘 조직해야 합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지난 3년 동안 나온 책과 자료집만도 100권이 넘습니다. 내년에는 1년에 100권 정도씩 낼 생각입니다. 번역서도 내는데 자원봉사팀인 ‘고리’를 모집하는 데 40여 명이나 모였어요. 영어·일본어부터 시작해 국제보편어인 에스페란토어까지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좋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전문가는 무한합니다.”
■ 우리는 베품·나눔에 인색하다고 하죠.
“ 그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어렸을 적 시골에 살았는데요, 가난했던 시절에도 거지들이 오면 나눠주곤 했거든요. 집에 사랑방이 있어서 잠 잘 데가 없으면 재워 주고, 밥도 주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서울이라는 도시는 시골보다 더 잘 사는 데 재워 주고 밥 주는 집이 없잖아요. 예전과 같은 나눔 공동체는 전쟁이나 분단, 남북 간의 갈등과 대립 때문에 무너졌지만 얼마든지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어릴 때부터 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느 날 부자가 됐다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이 갑자기 생길까요.”
■ 이겨야 살아남는 경쟁 시대라서가 아닐까요.
“ 글쎄요, 저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때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에는 경쟁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윈윈도 있거든요. 미국 부자들은 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공동체의 윈윈이라는 구조를 갖췄어요. 빌 게이츠를 보세요. 얼마 전 은퇴해서 자선사업가가 됐잖아요.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고요. 이런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경쟁만 하는 사회의 끝은 오히려 붕괴를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게 삶을 이어가는 과정으로서의 돈 벌기지 돈을 위한 노예가 되선 안 되잖습니까. 우리나라의 자본가·기업가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 근사한 건물 밑이 흔들리는 느낌인데요.
“ 기본이 선 사회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신데요, 정학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물질보다 정신이 먼저고, 하드웨어 이전에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그 위에 있는 하드웨어도 제대로 굴러가죠. 공연·문화예술회관이 전국에 몇 백 개가 있는데요,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 채 지었죠.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 자살률 2위, 강간발생률은 세계 6위나 돼요. 먹고 살만 하긴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죠. 뭘 위해 열심히 일했는지 헷갈리는 거예요. 과잉 급속성장의 폐해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지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역시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한데요, 근본으로 돌아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민센터에 가 보면 많은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그런데 수지침, 노래, 일본어, 춤 이런 것뿐이에요. 여기에 인문학 같은 수업이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왜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철학과 윤리학이 있어야 업그레이드할 수 있죠. 인문학은 대학에서만 배우는 게 아닙니다.”
■ 이런 시대에 청년들이 나서야 할 텐데 안타깝습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대기업만 들어가려 하고, 공무원만 되려고 하니 취업의 길이 좁아요.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한데 못 보고 있어요.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 이웃에 봉사하는 길을 찾으면 더 많은 길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소셜디자인스쿨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큰 꿈을 꿔 보라는 거죠. 현재 2기를 진행 중인데요, 제가 1기 때 길과 꿈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꿈을 실현시키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어떻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지, 어떻게 돈을 모을지, 그리고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지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3기는 안철수씨가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진행할 겁니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전과 용기와 창의적인 힘만 있다면 우리가 왜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못 만들겠습니까.”
■ 대학에서 지식만 전달하지 말고 인성교육도 해야죠.
“ 우리나라는 돈 버는 것만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돈도 못 번다고 생각해요. 나눔이 전제되지 않으면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죠. 제3세계에 가서 돈만 벌고 책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은 오래 못갑니다. ‘휴머니티’라는 백그라운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학은 이런 사회의 요구나 변화와 더불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GE를 보세요. 전구 만들던 기업이 팩토링하다가 지금은 환경 회사로 바뀌고 있거든요. 대학은 기본적으로 교육기관이잖아요. 그럼 사회에서 일할 젊은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지에 대해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은 그런 점에서 실패하지 않았나 싶어요. 논 프로핏(Non profit), 펀드레이징, 굿 거버먼스,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해 교수님들이 관심이 전혀 없어보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조직이 존재하고 이런 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 아름다운가게는 아름다운재단에서 분리·독립했습니다. 매출액이 110억원이나 됐죠. 그런데 전 커지면 분리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덩치가 커지는데 다 갖고 있어 봤자 뭐합니까. 각자 사회를 위해 나아가면 되는 거죠. 일을 최초 시작한 사람의 비전이나 열정, 헌신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냥 놔두는 일도 중요합니다. 저는 파트너십과 네트워크가 핵심인 사람입니다. 조직을 시작할 때 세 가지를 고민하는데, 첫째가 팀워크, 둘째가 사업의 포맷, 그리고 세 번째가 지속 가능성입니다. 제가 없어도 가능한 조직이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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